어른이가 좋아하는 도쿄 문방구 2
*이 글의 사진은 2023년 12월 도쿄 취재 때 찍었어요. 시간이 지난 만큼 매장 구성과 상품은 달라졌을 수 있어요. 주소와 영업시간은 2026년 10월에 다시 확인했어요.
어른이가 좋아하는 도쿄 문방구, 두 번째 시간은 시모키타자와의 로컬을 닮은 복합문화공간 ‘리로드’의 숨은 보석 ‘데스크라보’와 여행자의 가장 큰 문구 러기지 ‘트래블러스 팩토리’를 소개한다. 도쿄 문방구 이야기 속 공간은 모두 너무 좋아하는 곳들이라, 보석상자 깊은 곳에 넣어뒀던 아끼는 진주 목걸이를 꺼내는 기분이다. 글을 쓰는 동안 도쿄를 다시 거니는 것 같기도 하다. (아, 여행 고프다) 나 대신 가 주실 분들에게 소개하는 두 곳, 진짜 시작.

리로드 ‘데스크라보(desk labo)’
3 Chome-19-20 Kitazawa, Setagaya City, Tokyo 155-0031 일본
데스크라보 화~일 11:00~19:00 · 월요일 휴무 (2026년 10월 확인)
구글맵에서 보기 (데스크라보) · 구글맵에서 보기 (리로드) · 리로드 홈페이지“알록달록 알짜만 모아둔 문구 편집숍”
추천 제품: 계산기, 필기구, 연필깎이 등 (문구 편집숍이기 때문에 분기별로 물건이 다를 수 있다)
도쿄 시모키타자와에 처음 왔던 날, “여긴 홍대 느낌의 동묘인가?” 싶었다. 한국의 동묘와 홍대가 섞인 느낌이랄까. 빈티지 옷 가게와 수프 커리 맛집이 뒤섞인 곳이라, 눈 돌리는 곳마다 빈티지 가게 아니면 커리집이다. (내 눈에만 커리집이 많아 보였을 수도 있다.) 작은 골목과 골목 사이로 빽빽하게 들어선 가게들을 보고 있노라면 홍대 어느 거리를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리로드’는 시모키타자와역에서 5분 정도 슬렁슬렁 걸어가면 만나는 무채색 건물이다. 규모가 꽤 큰데도 옅은 미색에 간판이 두드러지지 않아서 옆 건물이나 동네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으로 들어서면 골목골목 계단이 나오기도 하고 좁다란 복도가 나온다. 골목 하나를 지나 코너를 돌 때마다 쿨한 가게가 하나씩 등장하는 게 꼭 시모키타자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 후 리로드를 찾아보니 시모키타자와 동네의 특성을 반영해 만든 공간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고 건물이 동네와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설계하신 분이 이걸 안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는 망상을 해본다.)




시모키타자와를 닮은 장소
2021년 만들어진 리로드는 전쟁 전 생활 동선이 복잡하게 얽힌 좁은 골목길의 도시, 시모키타자와를 그려 만든 상업시설이다. 리로드(reload)라는 이름도 시모키타자와의 역사와 문화를 갱신한다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리로드에는 스무 곳 남짓한 상점 외에도 힙한 사람들만 머물 것 같은 ‘머스타드 호텔’, ‘어드리프트’라는 공연장 겸 주방 공간, 입구 쪽 이벤트 홀이 있다.
상점으로는 귀여운 쿠키집,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향 브랜드 ‘APFR도쿄’, 커피 매니아들이 찾는 ‘오가와 커피’, 핫한 곳에는 어김없이 자리하는 ‘빔즈’가 있다. (이곳의 빔즈는 빔즈플래닛이다. 시모키타자와에 맞춘 브랜드들로 구성한 듯했는데, 수공예품이나 비즈, 가죽공예 제품이 많았다. 이날은 우연히 어떤 행사가 열리고 있었는지 무료 스낵과 음료를 권해 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픈 알록달록 문구 편집숍 ‘데스크라보’도 있다.



알록달록 섞어찌개 같은 문방구
데스크라보의 첫인상은 ‘알록달록 맛있는 섞어찌개 같은 문방구’였다. 왜 섞어찌개 같았냐면, 도쿄 로컬 브랜드가 종종 있긴 했지만 미국 제품, 유럽 제품 할 것 없이 모두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맛있는 섞어찌개처럼 조화로웠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알록달록 고채도 색상들이 반겨 주어 텐션이 올라간다. 개인적으로 먼 미래에 문구 편집숍 겸 카페를 하고 싶은 소망이 있는데, 공간을 열게 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던 장소다. 작은 공간에 귀여운 문구들이 알차게 들어서 있다.




한쪽 벽에는 색도 모양도 다른 캘린더가 가득했고, 조그만 나무 선반에는 마스킹테이프가 빼곡히 놓여 있었다. 귀여운 목각인형 오브제와 캐릭터 도자기 인형, 앞 접시가 경계 없이 섞여 있는 모습. 꽃과 도트. 스트라이프 같은 패턴들을 보느라 눈이 바삐 돌아간다.


귀여운 계산기 하나
도쿄행을 계획했을 때부터 ‘계산기 하나 사 오기’가 여행 투두 리스트에 있었다. 도쿄는 어떤 상점을 가도 계산기가 하나는 꼭 놓여 있는데, 그게 뭔가 멋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계산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아이폰 계산기를 더 많이 찾겠지만, 그래도 버튼을 직접 누를 수 있는 귀여운 계산기를 사고 싶었다. 이곳에는 ‘MILAN’사의 계산기가 많았는데 크기도 모양도 달라서 직접 만져보고 한참을 고민하다 ‘내 계산기’를 골라 왔다.


구입한 밀란 사 계산기 & 알록달록 종이 네임 스티커
밀란은 1918년 지우개 하나로 시작한 스페인 문구 브랜드다. 강낭콩처럼 반질반질한 고무지우개로 유명한데, 무독성 문구를 만드는 스페인 국민 문구 브랜드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지우개 외에도 다양한 문구를 만든다. (도쿄에 가서 메이드인차이나 스페인 브랜드 계산기를 산 아이러니.) 직원분이 어찌나 친절하신지 20분 정도 고민하며 질문을 여러 번 드렸는데, 함께 고민하고 비교해 주셔서 기분 좋게 쇼핑했다. 예쁜 제품이 어찌나 많은지 한참을 빙빙 돌았다.
작은 공간이지만 질 좋고 예쁜 제품들로 가득해서 짱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곳. 사장님의 안목과 미감이 훌륭하다. 문구를 좋아한다면 리로드 구경도 할 겸 가보길 추천한다.

트래블러스 팩토리(Traveler’s Factory)
3 Chome-13-10 Kamimeguro, Meguro City, Tokyo 153-0051 일본
12:00~20:00 · 화요일 휴무 (2026년 10월 확인)
구글맵에서 보기
“문구를 좋아하는 어느 여행자의 러기지 같은 곳”
-추천 제품: 여행자의 노트(다이어리), 미니 색연필 세트
40분, 타임어택
‘트래블러스 팩토리’는 나카메구로에 있다. 이날은 다른 곳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쓴 탓에 폐점 40분 전쯤에야 들어가 구경했다. 2층에 문구 숍 말고 다른 공간도 있는 듯했지만 2층은 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1층 문구점 이야기만 하려 한다.

캄캄한 저녁에 도착한 트래블러스 팩토리
트래블러스 팩토리는 외관부터 범상치 않았다. 노오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내부에는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둔 때라 트리와 전구가 곳곳을 장식하고 있기도 했다.

학창 시절, 추억에 잠겨
문 안쪽으로 들어서자마자 트래블러스 팩토리의 시그니처 아이템이자 스테디셀러인 여행자 노트 섹션이 보인다. 고등학교 때였나, 손때와 생활감이 잔뜩 묻어나는 가죽 다이어리가 갖고 싶어서 이 노트를 샀더랬다. 고등학생 용돈에 비하면 꽤 큰 지출이었기 때문에 어찌나 아껴 들었던지..! 사연(?)
이 묻어나는 다이어리를 만들고 싶었는데 너무 아껴 쓰느라 그런 느낌이 덜했던 기억이 난다. 몇 년을 아끼던 다이어리였는데, 이어진 이사와 여러 삶의 굴곡을 지나는 사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대학을 졸업한 어느 날,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를 다이어리가 문득 생각나서 온 집안을 뒤졌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떠나간 옛 친구를 뒤늦게 찾는 마음일까? 뭐든 너무 아낄 필요 없이 푸지게 쓰고 순간을 부둥켜안아야 함을 알게 한 노트다. TMI였지만 그만큼 길든 추억, 애착, 애증이 가득한 아이템이라는 얘기다. 여행자 노트는 가죽 커버의 크기나 색감부터 다이어리를 고정하는 줄과 장식까지 모든 게 커스텀이다. 자기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데, 작은 여권 크기부터 손바닥 하나를 훌쩍 넘는 넉넉한 사이즈까지 다양하다.
그립고 짭짤한 옛 추억에 잔뜩 질척이다 겨우 지나쳤던 노트 섹션. 가방 속 ‘느낌 있는’ 멋쟁이 아이템이 괜히 갖고 싶어지면 트래블러스 팩토리의 여행자 노트가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노트 추억으로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이곳은 노트 말고도 매력적인 선택지가 차고 넘친다.



옛 상상 속 선물가게
어린 시절, 해외 출장이 잦은 큰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외국 출장을 다녀온 삼촌에게 받아 온 장난감과 색연필을 꺼낼 때마다 그랬더랬다. (어릴 적 이야기를 자꾸 적자니 민망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곳이 그런 곳이니까.) 어릴 적 상상 속 ‘큰아빠’가 이 가게에 들러 무언가를 사 왔다면 반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을 것이다.(라는 상상을 했다)
황동으로 만든 튼튼하고 묵직한 키링, 가죽 필통이나 카메라 줄, 워터볼, 멋진 펜과 색연필까지 종류가 정말 많은데 하나같이 ‘느낌 있는’ 아이템들이다. 문구를 좋아하는 여행자의 가방 속을 보는 것 같달까?




도쿄 여행 기념품 추천
특히 미니 색연필 세트와 초미니 하모니카는 보는 즉시 찐 감탄이 흘러나왔다. (참고로 미니 색연필 세트는 계속 판매하는 제품으로 보이는데, 미니 하모니카는 장담 못 한다.) 이렇게 자그마한 색연필과 하모니카를 어디에 쓰겠나 싶겠지만, 미니 색연필 세트는 책에 밑줄 그을 때 유용하고, 하모니카는..
예쁘지 않은가. 그럼 쓸모는 다 한 거 아닐까? 사실 계속 고민하다 하모니카는 사지 않았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 조금 후회 중이다. 책상에 두기만 해도 예뻤을 텐데 그냥 사 올걸. 색연필 세트는 선물용으로 좋아서 여러 개를 꺼내 들었다. 아기를 키우는 친구들 집에 하나씩 주기 좋으니 일본 여행 기념품으로 추천한다. 물론 아기가 없어도 문구를 좋아하는 어른 친구가 있다면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공간 전체가 여행과 여행자를 위한 아이템들로 가득하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여행자로서 찾은 이 공간을 더 알차게 즐겼을 것이다. 2층 구경은 고사하고 구석구석 살피지도 못해서 속으로 ‘아쉽다’를 되뇌었다. 하지만 퇴근이 임박한 스태프님들을 보며 아쉬운 마음은 뒤로한 채 계산대로 발걸음을 돌린다.


계산대 옆에는 도장이 여러 종류 놓여 있었다. 아마 여행자 노트를 가진 사람들이 여기서 도장을 찍어 가는 듯했다. 여행자가 찾아가면 여행의 들뜸과 환상에 더욱 취할 수 있을 것 같은 여행자의 문방구, 트래블러스 팩토리. 언제든 다시 여행자가 되어 찾고 싶다.
*사진 촬영: 2023년 12월 · 영업 정보 확인: 2026년 10월.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한 번 더 확인하시길 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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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의 모든 저작권은 핍풀에 있음을 알립니다.
P.S.
문구 여행기의 두 번째 글이 끝났습니다. 마지막 한 편도 곧 이어집니다!
Credit
글 & 사진 다인정(@manypeople__j)